친정 엄마는 40대 중반에 과부가 되셨다.
90년대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암진단을 받으신 아빠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에서 약으로 버티시다 50대 초반에 천국에 가셨다.
엄마는 점점 쪼들리는 생활에도 삼 남매 대학 졸업까지는 뒷바라지하신다며 새벽별보고 나가셔서 밤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가방끈이 짧은 중년여성이 할수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금 호칭으로 가사도우미나 주방보조일을 알아봐 주는 인력파견업체에 등록하신 엄마는 하루에 2,3건씩 식당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셨다.
그렇게 다니시다 인연을 맺게 되신 의사 선생님 가정에서 10년이 넘게 가사도우미 일을 하시면서 삼 남매가 결혼하고 손주가 태어날 때까지 20년이 넘도록 주 6일을 10시간 넘게 일하시면서 가장으로서 본인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셨다.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는 날름날름 받아먹는 새끼처럼 엄마의 고생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누리기만 했다.
40대 중반이 넘어서 식당이모생활을 시작하고서야 새벽공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엄마의 고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8시간씩 거의 종일 서있다시피 하며 홀 매니저 일을 하다보니 몸이 이렇게 힘이 들어도 때려치울 수 없는 이유가 아이들이였고, 고객들과 맘 상하는 일이 생겨도 다음날 아침이며 일어나 일을 나서게 되는 것도 아이들 때문이였다.
버스 첫 차 타시느라 교회 새벽기도를 갈 수 없어 우리 머리맡에 앉아 기도하시던 엄마
비몽사몽 들었지만 가끔씩은 울면서 하소연의 기도를 하시던 엄마
엄마가 걸어간 길이 얼마나 무겁고 힘겹고 무서웠을까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그 길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내 나이였을 울 엄마가 기도하며 다잡았을 그 마음이 조금은 느껴져서 애가 타고 속이 쓰리다.
아이들을 위해 더 일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고생하셨던 엄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내 힘이 허락하는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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